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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책] 검은 꽃 - 김영하

by ✩✩✩ 2016.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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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유쾌한 이야기꾼 김영하의 장편소설!
 지금 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김영하의 『검은 꽃』.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팔려가 조선 최초의 멕시코 이민자 1033명 중 11명의 이야기를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그들이 태평양을 건너 이국에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를 무거우면서도 경쾌하고, 광활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문체로 따라간다. 어쩔 수 없이 무너진 모국에서 버려지고 일탈한 그들의 씁쓸한 평생을 우리 기억 속에 새겨놓으면서, 우리 민족이 직ㆍ간접적으로 거쳐온 삶에 대한 알레고리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그를 데리고 전국을 주유하던 보부상은 그렇게 가르쳤다. 누가 먹을 것을 주거든 백을 세고 먹어라. 그리고 누가 네가 가진 것을 사려고 하거든 머리속에 떠오른 값의 배를 말해라.


어느 나라보다도 절실하게 군대가 필요했던 허약한 제국, 그러나 제국의 곳간에는 그들을 먹여살릴 쌀이 없었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군중들이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울고 웃고 노래하며 얽혀들자 갑판은 삽시간에 카니발적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 박수는 눈물을 흘렸다. 오매 오매 우리 어메. 뜨신 밥도 아니 주고 손목 잡아주고 못된 어메 우리 어메, 자식 이리 보내놓고 사시나 보겠소. 아니 아니, 잘못했소, 잘못했소, 우리 어메. 사시오, 우리 어메. 오래오래 사시오. 몫까지 잡숫고 오래오래 사시오.  


땅이 있었다면 아마 아무도 배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땅이 없었기에 군인이 되었고 땅이 없었기에 장가를 가지 못했고 땅이 없었기에 돌아갈 곳을 잃고 지독한 병영으로 기어 들어갔던 것이다.


사방 어디에도 산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유카탄의 석양은 느지막이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가 일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평생 지평선을 번도 적이 없는 조선인들에게 벌판의 황막함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산과 사이에서 태어나 산을 바라보고 자랐으며 산등성이로 지는 해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음을 깨달았다. 넘어갈 아리랑고개가 없는 끝없는 평원은 그야말로 낯선 풍경이어서 사람들은 딱히 바닥이 딱딱해서라기보다 지평선이 주는 막막함과 공허로 뒤척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봐야 이건 남의 나라 혁명이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들에게 맡기는 게 순리요.


이들은 신전 광장에 띠깔 역사상 가장 작은 나라를 세웠다. 국호는 신대한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국호는 대한과 조선뿐이었으므로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이 나라는 반상과 귀천의 구별이 없는 새로운 나라이다. 지금 이곳의 우리가 그 운명에 책임을 진다. 멕시코와 조선에도 알려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나라의 건설에 동참토록 하자. 그러나 이 건국 선언을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멕시코 노동 이민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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