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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댕기기

영주 부석사, 안양루에 올라 바라보는 소백산맥의 아름다움.

by ✩✩✩ 2018. 7. 9.

 읽어본적도 없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가 떠오르는 영주 부석사에 왔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깨달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이후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매표를 하고 부석사의 진입로를 오른다. 양쪽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있고, 그 너머에는 사과밭이 펼쳐진다. 입구에서부터 사과를 파는 노점이 있던데, 이곳에서 기른 사과인가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님은 "부석사의 진입로야 말로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라고 칭했다.




부석사 당간지주

 절에 행사가 있을때 절의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부석사 입구에 1m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 마주보는 안쪽 옆면과 바깥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양쪽 모서리의 모를 둥글게 다듬었다. 기둥 윗부분은 원을 2겹으로 경사지게 조각하였고, 옆면 3줄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기둥머리에는 깃대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 모양의 홈이 파여 있다. 기둥 사이에는 한 돌로 된 정사각형의 받침 위에 원형을 돌출시켜 깃대를 세우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이 주변에는 연꽃을 장식하고, 윗면 중앙에는 구멍을 뚫어 당간의 밑면을 받치고 있다.


꾸밈없이 소박해 보이지만 늘씬하게 뻗은 부석사의 당간지주. 통일신라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짧지않은 진입로를 오르다 보니, 드디어 천왕문에 다다랐다.



▲부석사의 삼층석탑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안양루에 올라 소백산을 앞마당으로 삼았다는 부석사의 장쾌한 경관을 내려본다.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 18호)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본당으로 극락정토의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고려 현종 7년에 원융국사가 고쳐지었으며, 고려 공민왕 7년에 외적에 의해 불에 타, 고려 우왕 2년에 원응국사가 다시 지었다. 조선 광해군 3년에는 폭풍우로 건물 일부가 파손되자 이를 복구하였으며, 이후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덜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중간이 굵고 밑이나 위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 지는 배흘림기둥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물인 공포를 기둥위에서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와 형식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장식적인 요소가 적은 간결한 형태이나 건물 규모나 완성도 면에 있어서 장엄하고 깊이 있는 법당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무량수전 편액,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 한다.


이전까지는 영주 부석사 하면 배흘림 기둥이란 단어부터 떠올랐는데, 건축물에 식견도 없는 무지렁이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소백산맥의 풍경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은행나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의 부석사가 기대된다. 






덧,부석사에 다녀오고 얼마 후 부석사, 봉정사, 통도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소식을 알게 되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핫플레이스에 다녀왔다는데에 뿌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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